방촌황희선생

황희정승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장수, 처음 이름은 수로, 자는 구부, 호는 방촌, 시호는 익성이며 1363년 개성 가조리에서 태어났다. 1389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듬해 성균관학관이 되었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였으나 1394년(태조 3) 동료들의 설득과 태조의 간청으로 성균관 학관으로 복직, 세자의 스승을 겸임하였다. 그 뒤 태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6조의 판서를 두루 거쳐 세종대에는 18년간이나 영의정을 지냈다. 이때 황희는 나라의 근간이 되는 법과 각종 제도를 정비하는 등 세종대의 태평성대를 이룩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또한 너그러운 인품과 소신 있는 행동, 청빈한 생활로 지금까지도 존경을 받고 있다. 1452년(문종 2년) 서거하여 세종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방촌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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